Sunday, December 20, 2009

SIFF(Seoul Independant Film Festival) Winners

Grand winner
Earth's Women
dir. Woo-jung Kwon / 2009 / Documentary / Color / HD / 95 min.

the First Prize
Border City 2
dir. Hyung-sook Hong / 2009 / Documentary / Color / DV/ 104min

the Second Prize
Don't step out of the house
dir. Sung-hee Jo / 2008 / Fiction/ Color / HD / 43min

Award for a maverick(독불장군상)
Border City 2
dir. Hyung-sook Hong / 2009 / Documentary / Color / DV/ 104min

Audience Award
Turn it up to 11
dir. Seung-hwa Baek / 2009 / Documentary / Color / DV / 94 min

Special Mention
Cuban Boyfriend
dir. Ho-hyun Joung / 2009 / Documentary / Color / beta DV / 72 min

Take Place
dir. Yong-seok Park / 2009/ Experimental / Color / HD / 17 min

Friday, October 23, 2009

<사당동 더하기 22> 메모

조은 감독은 63살. 65학번. 65학번이면 당시엔 어마어마한 집안 출신이었다는 말이다. 거의 여왕님이었다는 말이다. 이 영화는 박경태(<나와 부엉이>)를 비롯한 동국대 사회학과, 영화학과 학생들을 데려다가 시킨 22년간의 (착취의) 기록. 사당동 빈민촌에 살다가 그 지역이 개발되면서 다른 지역으로 옮겨간 수많은 철거민들 중 유일하게 상계동 임대아파트에 입성한 가족을 22년동안 기록/지배 했다.


엊그제 네이트 메인에 걸린 이 영화 관련 기사.


-마지막 장면에서 장남 영주가 필리핀 신부로부터 낳은 아이를 두고 "얘는 교수처럼 거창한 거 말고 영어 선생이되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이것은 조은 교수와의 20년 간의 상호작용에서 온 결과일 수도 있음. 조은 교수가 좀더 그 가족들에게 '좋은' 사람이었다면, 그는 감히, 딸래미가 교수 됐으면 좋겠다, 고 말했을지도 모른다.

-마지막 closing says, "이것은 한 가족의 이야기이다. 그러나 단지 한 가족의 이야기만은 아니다."
딱 이 만큼의 책임감과 문제의식.


- 기사에서...
"애를 유산하려고 했는데 돈 몇 십만 원이 없으니까 한 달 두 달 기다리다가 애가 커졌지. 돈만 있으면 낳지 않았지." 손녀의 삶에 혀를 차는 정 할머니의 혼잣말도 조 교수의 카메라에 담겼다.
반면 바로 그 앞 부분에서...
한 달에 한 두 번은 꼭 시간을 내서 찾았고 명절이나 할머니 증손녀가 태어난 날 등 특별한 날도 놓치지 않았다.
그런데 조은은 낙태할 돈이 없어 애를 지우지 못한 은주를 보고만 있었다? 혹은 그냥 오랜만에 찾아갔을 때 그런 말을 할머니로부터 들은 것뿐이다? 대체 진실은 무엇?
오히려 이 장면이 '빈곤한 자'들의 '무개념'을 이야기하기 위한 한 에피소드처럼 보이는 이유는 무엇일까.


-아버지가 영화 극본가였던 유지나 교수(동국대)는 이 영화를 두고 엄청난 극찬을 했다고 한다. 그녀 역시 조은 교수와 같은 동네, 즉 여왕네 출신.


-80분 버전에서도, 영주가 필리핀 가서 대학원생들과 포르노보는 장면이 들어 있나?

-시간이 지날 수록 조은 감독은 어떻게 변했을까. 그 20년 넘는 시간 동안. 아마 좀더 그들에 대해 지배적인 사람이 됐을 거다. 할머니가 있을 때 못 들었던 보다 내밀한 이야기들을 들을 수 있는 위치로...

Monday, May 25, 2009

독립영화란 있는 게 아니란다


독립영화란 존재하지 않는다.


'이 영화는 독립영화'라는 말은, 정말이지 제대로 웃긴 말이다. 이 영화라는 명사는 현실적 사물을 지시하는 한, 독립영화는 그 현실적 범위나 규모에나 한정되고 있기 때문이며, 이는 독립영화의 함의를 스스로 제한하는 짓이기 때문이다. 물론 점이 모여서 선이 될 수도 있다는 논리를 받아들여도 마찬가지다. 이것은 독립영화이고, 저것도 독립영화이고...라는 식으로, 우리가 어떤 뛰어난 능력과 식견을 가지고서, 무한정한 리스트를 열거할 수 있다고 가정해보자. 이 무한정한 리스트에서, 독립영화라는 함의를 정의해줄 현실적 사물들(“이 영화”, “저 영화”라는 현실태들)이, 고갈되지 아니하고, 끝없이 나열될 수 있다는 것은 정말 기쁜 일이지만, 현실화되었던 영화들을 붙여 나가면서만 독립영화를 지시해야한다는 것은, 제대로 웃긴 것까지는 아니어도, 여전히 비효율적이고 불쌍하다는 의미에서, 은근히 웃긴 말이 된다. 이것은 마치 말 하나하나를 따먹기 위해서, 세부전술을 운용하다가 전체에서는 패배하는 어이 없이 불쌍한 장기 게임과 같다. 거꾸로 물어본다면, 그렇다면, 점이 모자라면 선이 없다고 말할 것인가? 혹은 굳이 점을 확인해야만 선을 증명할 수 있단 말인가?
실제로 한국의 독립영화 판은 이러한 점과 선의 논쟁에 때때로 휘말리곤 했음을 우린 잘 알고 있다. 물론 점이 사라졌으니 선도 끊어졌다고 외쳤던 논객들은, 독립영화의 함의에 대해서 반어법과 역설법을 뒤섞은 값진 응원을 해주었을 뿐이라는 점을 상기한다면, 그들의 비관조 논리는 증명법보다는 귀류법에 가까운 것이리라. 즉 점이 없으니 선이 없다 라고 말하는 것은, 외면 상 정말이지 저주에 가깝겠지만, 그것은 점이 없다고 선이 없을 수 없으니, 고로 점이라는 전제 자체, 점이 모여 선이 된다는 전제 자체가 문제라는 것을, 스스로에 대한 내면적 변증술로 보여주는 셈은 아닐까(그도 그럴 것이, 이러한 논쟁이 불거질 때마다, 비관조들은 항상 선언의 형태를 가지고 등장한 바 있다. 선언하기, 그것은 결코 설명하기나 묘사하기가 아니라, 증명을 우리에게 강요하고, 증명의 논리를 따라가도록 종용하는 것이다).
문제는 언제나 있었다(언제나 있을 것이다). 문제는 정말이지 도처에 있었다(그리고 도처에 있을 것이다). 애초에 우린 독립영화는 자유인 줄 알았다. 그러나 곧 이어 신자유주의가, 그리고 신자유주의적 낭만주의 감성이 밀려왔다. 그 다음에 우린 그것이 저항인 줄 알았다. 그러나 곧 이어 자본의 상대적 축적 및 적과 동지가 구별되지 않는 예외상태가 찾아왔다. 때때로 우린 그것이 표현 자체인 줄 알았다. 그러나 곧이어, 표현에도 내용과 형식이 있으며, 그것은 다시 좋거나 나쁜 내용, 좋거나 나쁜 형식으로 세부분할된다는 깨달음이 찾아왔다. 일례로 독립영화를 정의 혹은 제한하는 경향이 일찍이 불거졌을 때, 그것은 모든 미학적이고, 경제적인, 혹은 정치적이거나 심지어는 윤리적인 테두리들을 고려할 수 밖에 없었다. 물론 현실적으로 그러한 테두리의 제한은 실패했다는 것은 지금에 와서야 자명하다. 그러나 그것은, 단지 영화학교가 더 늘어났고, 영화교육의 채널들이 더 풍부해졌으며, 386이 후퇴하는 대신에 인터넷 세대가 전진했으며, 영화장비들이 경량화되고 접근용이해졌다는 역사적 사실 때문만은 아닐 것이다. 오히려 거꾸로, 그러한 역사적 사실을 낳는 어떤 힘, 즉 테두리를 제한하는 것만으로는 잘 설명되거나 묘사되지 않는, 차라리 테두리가 섞이는 힘, 테두리를 스스로 제한하지 않는 힘 덕분에 테두리 정하기는 실패할 수 밖에 없었다. 테두리를 정하는 시도는 결국 우리의 한계가 아니라 영화의 가능성 덕분에, 실패했다기보다는 실패하기를 성공했다고 말해야 한다. 결국 우리는 미학과 윤리, 정치의 범주를 나누는데 실패했으며, 내가 볼 때, 이 범주화 불가능성의 증명이야말로, 한국독립영화계가 그 척박한 현실 속에서 일궈낸, 가장 위대한 업적 중에 하나이다.
이 모든 것을 감안하지 않을 때, 우리는 다시 점을 모아 선을 잇는 행태로 되돌아간다. 그러나 다음은 분명하지 않은가: 말 하나가 먹혔다고 장기에서 지는 것은 아니다. 단지 작업을 관람하지 않고, 몸소 작업을 하거나, 혹은 그것이 아니라면, 몸소 작업을 하는 것처럼 관람을 빡시게 하는 사람들은 이를 잘 알고 있다: 작업을 할 때 점을 찍기 위해서 작업을 하진 않는다. 그들은 단지 선을 쫓을 뿐이며, 선을 쫓는 그 고집스러운 추격이 점으로 나타날 뿐이라는 것. 이런 점이 있었고, 이런 점이 지금 대세이고, 이런 점이 앞으로 인기있을 것이라는 것이라는 경험주의 귀납법보다는, 이 선이었어야 하고, 지금 이 선이어야만 하고, 앞으로 이 선이어야만 한다는, 일종의 선험 윤리학 같은 것이 영화제작을 지배하는 것. 마치 이 세부디테일을 쫓고, 저 세부디테일을 쫓다가 마침내 멀리 떨어져서 보면 큰 그림이 뒤죽박죽인 그림, 이 양념을 신경 쓰고 저 양념을 신경 쓰다가 마침내 먹어보면 엉망진창 간이 되어있는 음식, 이것이 바로 선을 추격하는 작업이 끝끝내 반대하고 대척하는 것이다(우린 비평에 있어서도, 이런 구분을 적용해볼 수 있다. 이 간...저 간 참견하듯 보고 다니면서 큰 간을 보지는 않는 비평이 있으며, 반대로 이 간....저 간에는 무심한 듯하나, 언제나 큰 간 보기를 즐기는 비평이 있다). 요컨대, 이 영화가 독립영화니 아니니 하는 것, 더 근원적으로 범주를 나눈다는 것, 그것은 점을 찍는 것인데 반해, 영화는 언제나 점이 아니라 선으로 전개된다. 엄밀히 말하자면, 점 이전에 선으로 전개되고 있는 것이다.
우린 결국, 점이 선을 만드는 것이 아니라, 거꾸로 선이 점을 만드는 것이라는 논리를 받아들여야만 할 것이다. 선이 맘에 안든다면, 접선으로 해두자. 접선은 접점들을 그려내지 않는가. 그것이 점선이라도 좋다. 아니라면, 그것은 언제나 점선이다. 분명하게 보이지는 않지만, 그만큼 끈질긴. “이 영화는 독립영화”라고 말하는 것이 제대로 웃긴 말인 것은 위와 같은 논리에 입각해서이다. “독립영화”라는 선은, “이 영화”라는 점으로는 설명되지도 구성되지도 환원되지도 않는....점 자체는 아니어도, 하지만 바로 그 때문에, 점을 낳는 힘이기 때문이다. 이 영화는 저 영화 바깥에 있을 것이다. 그러나 독립영화는 그렇지 않다. 그것은 이 영화에서 저 영화까지 관류 관통한다. 이 영화는 스크린에 보인다. 그러나 독립영화는 스크린에 보이지 않는다. 이 영화는 감독이 있다. 그러나 독립영화엔 감독이 없다. 이 영화는 관객이 개개인이다. 그러나 독립영화는 역사가 그 관객이다. 이 영화는 언젠가는 파기되고 잊혀질 것이다. 그러나 독립영화는 파기될 프린트도, 잊혀질 네가 필름도 없다. 왜냐하면, 독립영화는 이 영화나 저 영화가 아니라, 이 영화나 저 영화 자체를 낳는 선, 힘이기 때문이다.
웃자고 하는 말은 아닐 터, 허황된 말도 아닐터. 권력이 인민에게 돌아가지, 인민이 권력에 돌아가는 것은 아니다. 이 영화는 존재할지언정, 독립영화란 존재하지 않는다. 독립영화는 이 영화, 저 영화를 비로소 존재하게 하는 힘이기 때문이다. 독립영화는 현실에 없다. 독립영화는 언제나 잠재적이고, 힘이기 때문이다.

Saturday, May 23, 2009

5월 23일 토요일

그리스 3대 비극 작가 :

아이스퀼로스, 소포클레스, 에우리피데스. 아테네의 전성기가 낳은 아들이자 기원전 5세기를 그리스 문화의 황금기로 만든 주역들이다. 각각 그리스 비극 전성기의 초기, 중기, 후기를 각각 대표한다.

아이스퀼로스 : 합창 중심의 조잡한 무대에 대화를 도입. 비극을 정립. 비극의 주인공은 신이며, 인간은 '죄와 벌'의 사슬에 묶여 극한의 고통에 몸부림친다.

소포클레스 : 극중 대화 장면을 늘리고 규모를 키움으로써 비극을 완성. <오레스테이아>. 인간의 죄와 벌의 긴 사슬을 장대하게 보여준다.

에우리피데스 : 인물들의 내면을 입체적으로 구현함으로써 비극의 성격을 전환. 비극의 중심은 인간. 신들은 이해할 수 없는 존재이며, 그들이 인간에게 부과하는 운명은 당혹스런 수수께끼. <오이디푸스왕>

위대한 음악가들에게 우리가 흔하게 붙이는 수사가 '악성', '음악의 신동', '음악의 아버지' 같은 진부한 것들이다. 모차르트를 '음악의 신동'이라고 하지만, 음악사에 이름 남긴 사람치고 신동 아닌 사람은 없을 것이다..

그런데 모차르트는 그러한 진부한 표현 안에 낡은 이미지로 갇힐만한 '괴팍한 개인' 그 이상이다. 그가 한 시대의 복판에서 어떻게 살아갔는지, 그가 겪은 시련의 상당부분은 당대성의 깊은 그늘이었음을 기억하지 않으면 안된다. 엘리아스는 <모차르트>에서 '근대적인 개인의 탄생'을 읽는다. 폴 맥가는 <모차르트-혁명의 서곡>에서 6살 대 뮌헨의 선제후 막시밀리안 요제프 3세 앞에서 연주했던 모차르트가 어떻게 그 세계를 벗어나 계몽과 이성의 한 시대를 살아냈는가를 말해준다. 슈베르트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다. 슈베르트를 '가곡의 왕'이라고 할 때, 우리는 그가 살았던 반혁명의 메테르니히 통치에 따른 비더마이어 문화가 강요한 평화를 전혀 떠올릴 수 없다. 낡은 수사에 가려진 진실을 보아야 할 것이다.

-정윤수

소득이 최저 생계비에 못 미치는 절대 빈곤층의 아동 청소년이 전체의 7.8%에 이르며, 월소득 150만원(최저생계비의 120%) 미만인 상대빈곤층까지 하하면 18살 이하 아동 청소년의 11.5%가 빈곤에 시달리고 있다는 정부차원의 첫 종합실태조사 결과가 나왔다.

Friday, May 22, 2009

이젠 정말 듀얼스크린 시대

"소셜 네트워크와 다른 미디어를 갖고 어떻게 상호적인 관계를 만들어갈 지 생각하라

2008년 10월 닐슨 연구가 발간한 보고서에 따르면 미국 가정의 1/3이 인터넷을 쓰는 용도는 텔레비전 시청을 기반으로 하고 있다는 것으로 드러났다. 게다가 텔레비전을 보고 인터넷을 쓰는 80% 이상의 미국인들은 그 둘을 동시에 쓰고 있었다. 이런 경향은 십대들에게 분명 두드러지긴 하지만 성인들도 인터넷과 텔레비전 사용을 동시에 하는 경우가 많다.
이러한 조기적 트렌드는 온라인 사용이 전통적 텔레비전 시청의 ‘대체’가 아니라 ‘보완’이라는 것을 보여준다.소셜 네트워크, 텔레비전은 최근의 오스카 시상식이 증명해줬듯이 상호적으로 서로를 강화한다."



-닐슨 보고서(09.3) 전지구적 국면과 네트워크화된 장소들(소셜 네트워킹의 새로운 전지구적 족적에 대한 닐슨의 리포트)

Thursday, May 21, 2009

신문의 미래

Will Social Media Save The Newspaper Industry?

위치: Social Media Explorer 작성자: David Finch

David Finch
One thing I could guarantee growing up in a small Midwestern farming community was that in our house there would always be two daily newspapers and RC cola. The newspaper for our family was the door into another world. It contained entry into distant lands, humor, games and even advice. It sparked conversations and influenced our view on the world. It shaped our politics and brought us closer to our heroes. It was more than a news channel it was a daily experience.
That daily experience has influenced the way that I consume the news. It’s very common for me to receive 2-3 newspapers a day, not to mention the global papers that I read online. There is a difference how I approach the two: The hard copy is a daily event. The online version is nothing more than a task - scouring for facts and ideas.
Will it be the Kindle?On Wednesday, Amazon released their latest version of the Kindle that many are touting as the device that will save the newspaper. Larger screen, more memory, sharper images and text. It’s being branded as the perfect device for reading magazines and newspapers. It is also being pitched as a greener way to consume information. While all the things mentioned above are true, there’s one thing the Kindle can’t replace and that is the user experience.
It will take more than Twitter updates?The latest trend is for newspapers to “tweet” their headlines that point their Twitter followers to their online articles. It’s very common to see headlines, but no conversation between the newspaper and the follower. To the newspaper industry, it’s nothing more than a broadcasting tool that announces the latest story. It’s an old idea in a new car trying to take you to the same old place. While I follow many news outlets on Twitter, I seldom click on their links, unless a friend has referred it to me.
Woody Lewis, social media strategist and web architect listed 10 ways newspapers are using social media to save their industry in a recent blog post at Mashable.com Here are a few ideas he mentions:
Creating online events to attract readers
Promoting and monetizing user generated content
Story-based communities
Collaborative outsourced news services
Customized delivery
While newspapers are stopping the presses and letting go of staff, there are those that are trying to incorporate some of the strategies that Woody mentions. However, in my opinion I think you’ll see more newspapers close their doors when they don’t see the return as quickly as anticipated.
The general pressure from within the newspaper industry is the loss of subscriptions, as well as advertising dollars. While I seldom hear anything in regards to the reader, there is plenty being said about the loss of revenue and how it is affecting the industry at large. It’s a race against time and a quest for more dollars.
It will take more than social media to save the newspaper.
Recreating the user experienceThe day the newspaper industry recreates the user experience will be the day the newspaper is once again the talk of the town. If it is just looking for new channels then the future is grim, because I can find the news anywhere. The reason I read the newspaper is not because what it contains, but how it makes me feel and the memories that it invokes. It connects me with my past while I read about the daily events.
Perhaps, the newspaper as we know it must die, not because its content isn’t relevant, or its attempts to use social media has failed, but because the consumer no longer identifies with it.
In my opinion, it’s just a matter of time, but until then I can guarantee you can find me every weekend with a cup of coffee, the New York Times, and my favorite jazz artists in the background.
What are your thoughts? Are you still reading newspapers? Do you think social media can save the day? If you had a chance to advise your favorite newspaper, what would you suggest?
Related articles by Zemanta
Is Kindle a newspaper savior? Not quite (news.cnet.com)
New York Times Price Hike: Daily, Sunday Edition Prices Both Go Up (huffingtonpost.com)
Why the Kindle HD Can’t Save Newspapers (gigaom.com)

청년문화는 아마 안될 거야

http://ozzyz.egloos.com/tb/4142342

휴 힘든 일이다

Wednesday, May 20, 2009

Social Media Stories 2.0

lose control
stream small
create socially

Tuesday, May 19, 2009

Social Media News Release (SMN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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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ednesday, April 29, 2009

Sunday, March 8, 2009

인디다큐페스티벌 2009

http://sidof.org/

김주영, 김형남 씨! 오랜만에 형남 씨를 보는구나. 작품 눈 똑바로 뜨고 볼게요. 으흐흐, 그리고 싸가지없는 다큐멘터리 크리틱 흉내를 제대로 내겠다. 만나면 제대로 술 먹는 거다!

태준식, 김태일의 공동체 다큐멘터리를 기대하고 있다. 샘터분식과 농민약국. 나중에도 좋은 공부가 될 작품이라 기대된다. 나는 때때로 이 둘이 많이 헷갈렸다. 김태일은 '안녕사요나라' 그리고 태준식은 '농담같은 이야기-저작권 제자리 찾아주기 프로젝트 1.0 (2006)', '우리모두는 구본주다', '불타는 필름의 연대기'의 한 꼭지를 맡았었다. '필승 연영석'을 만들기도 했지만, 그건 내가 안 봤으니 패스. 둘 다 재미있는 작품을 만드는 사람들은 아니다.

윤덕현의 농민가는 스튜디오 느림보의 다음 개봉 예정작. 난 이번에도 고영재 프로듀서의 무지 착하고 진정성 넘치는 작품을 보면서 불평하는 나쁜 관객이 될 것이다.

그리고 김일란 감독 작품 드디어 보겠구나. 꼭 봐야지. 이번엔 정말 꼭 봐야지.

김환태 감독도 작품을 냈다. '국경은 없다'. 잘 보겠습니다, 감독님. 저 기억 못하죠? 저도 방금 불현듯 그 때가 생각이 나네요. 전 사회학과 졸업하고 밥 벌면서 잘 살고 있습니다. 아무렴요.


그리고 내가 언제나 사랑하는 김경만 감독님. 실물은 시크한 도시남이시다. *.*
그의 <바보는 감기에 걸리지 않는다> 강추. 완전 웃기다. 영화제작소 청년의 이강현 감독 잘난체 하는 역할로 특별 출연.




Saturday, March 7, 2009

프랑스 방송 미디어 다양성 보호 정책

시청각최고위원회(CSA)는 방송 미디어에서의 인종적 다양성뿐만 아니라, 정치적, 문화적 다양성이 지켜질 수 있도록 여러 정책을 내세우고 있다.

2007년에는 '방송의 다양성 감시기구'를 신설해, '국가정보자유위원회'나, '평등을 위한 차별 대항 투쟁 고등기관' 등과 연합해, 방송 프로그램에서 나타나는 질적, 양적 연구를 담당한다.

또한 '다양성 바로미터'를 만들어 6개월마다 각 채널에서 다양성 확보가 얼마나 발전하였는지 결과를 공표하도록 한다.

이러한 방송 콘텐츠에서의 다양성 확보 노력과 더불어, 1986년 9월 30일 제정된 레오타르법은 시청각최고위원회가 각 채널에 방송법에 의거하여 의견과 관점 표출에 있어서 다원주의를 보장하도록 권고할 의무를 명시하고 있다. CSA는 매달 모든 프로그램에서 정치인의 발언 시간을 조사하고, 이 조사 결과는 상하 의원에 전달된다. 이렇게 각 여야 정당들과 정부와 정치인에게 평등한 의견 제시 및 발언 시간을 할애하도록 한다.

다른 한편, 프랑스 정부는 레오타르법 39,40,41조에 따라 방송미디어의 다양성 확보를 위한 미디어 소유집중을 규제하고 있다.

39조
개인 또는 법인 단독으로 연평균 8% 이상의 시청자를 확보하고 있는 지상파 방송을 하는 방송사의 지분 및 투표권 49% 이상을 보유할 수 없고

개인 또는 법인이 단독으로 아날로그 지상파 TV 방송사의 15% 이상의 지분 및 투표권을 보유한 경우 다른 아날로그 지상파 TV 방송사의 지분 15% 이상을 보유할 수 없다.

2개의 아날로그 지상파 TV 방송사의 지분 5% 이상을 소유한 개인 또는 법인은 다른 아날로그 지상파 TV 방송사의 지분 5% 이상을 보유할 수 없다.

위성 방송사의 경우 한 명의 개인이나 법인이 50% 이상의 지분을 소유할 수 없다.
(...)

40조
외국 국적자의 방송사 소유에 대한 제한 명시. 누구도 동시에 아날로그 지상파 TV 전국 방송과 해외령의 아날로그 지상파 TV 방송을 소유할 수 없다.
(...)

41조 1항
아날로그 전국 방송의 다양성을 위해 다음의 경우에 있어 어떠한 아날로그 TV나 라디오 방송도 단 한 개의 법인이나 개인에 허가되지 않는다.


400만 명 이상의 거쥔에 방송 주파수가 닿을 수 있는 영역에 대해 지상파 TV 방송을 하나 이상 허가 받은 경우나

전체 발행 부수의 20% 이상을 커버하는 하나 이상의 전국 일간지를 소유한 경우에는 TV 및 라디오 방송사 소유를 금지하고 있다.





출처; 방송/콘텐츠 동향과 분석 통권 288호






조선일보는 한국에서 발행부수가 가장 많다. 작년 조선일보가 ABC에 발행부수를 부정하게 신고한 사건이 있었다.

『3.1절특집』 독립운동가 이효정의 “나의 이야기” 보도자료

항일 독립운동가의 집안에서 태어난 이효정은 동덕여고보 재학 중 발생한 광주학생항일운동에 동조하여 동맹휴학을 주도,무기정학을 받는다. 동덕여고보를 졸업한 이효정은 잠시 울산의 한 학교에서 교편을 잡다가 요시찰 인물로 찍혀서 강제로 사직당하고 경성(서울)으로 올라와 사회주의 노동운동가 이재유가 주도한 <경성 트로이카> 조직에 가입해 경성 최대의 공장이었던 종연방직 파업을 이끌어 서대문 형무소에서 1년 1개월 동안 투옥된다. 이재유, 이현상, 김삼룡 등이 주도했던 <경성 트로이카>는 핵심조직원만 200명, 연루자가 1,000명에 달했던 1930년대 최대의 항일운동조직이었다. 이들은 엄혹했던 일제치하에서 공장 노동자들을 조직해 연쇄파업을 일으키는 한편 학생들과도 연계해 대규모 학생시위를 일으킴으로써 일본경찰에게는 가장 두려운 존재였다.

이효정은 출옥한 뒤 고문 후유증으로 치료를 받다가 교원노조사건으로 2년간 투옥된 경력이 있는 사회주의 항일운동가 박두복과 결혼해 평범한 주부로 돌아갔다. 그러나 해방이 되자 남편은 여운형과 박헌영이 이끌었던 건국준비위원회 울산 대의원으로 좌익활동을 하다가 남로당 사건에 연루돼 서대문형무소에 수감됐다가 한국전쟁이 발발하자 월북한다.

2남 1녀의 자녀와 함께 남한에 남겨진 이효정은 교직에서 쫓겨나 “빨갱이 가족”이란 손가락질을 받으면서 호떡장사, 공장 노동자, 과일장사 등을 전전하며 생계를 꾸려간다. 그러다가 1950년대 말 남편이 남파간첩으로 활동하다가 다시 월북했다는 청천벽력 같은 소식을 듣게 된다. 그때부터 이효정은 요시찰 인물이 돼 수시로 사찰기관에 연행돼 고문과 취조를 당하게 된다. 냉전시대 공산당 남편을 둔 여자의 삶에 인권은 사치였다. 영장 없이 끌려가기를 수십 차례. 고문으로 팔목이 부러지는 장애를 입으면서 억울한 옥살이도 감수해야 했다.

6월 항쟁으로 민주화가 이루어지자 이효정에 대한 사찰도 수그러들기 시작했다. 이효정은 팔순이 넘긴 나이에 자유를 얻어 문학회에 가입해 시집을 출간하는 등 문학인으로서의 새로운 삶을 살아간다. 2006년 정부의 사회주의 독립운동가들에 대한 재조명 작업이 이루어지면서 마침내 독립유공자로 지정된다. 일제치하와 독재정권을 거치면서 평생을 쫓기면서 살아온 이효정에게 떳떳한 대한민국 국민으로서 다시 태어나는 순간이었다. 나이 아흔 세 살 때의 일이었다.

올해 나이 아흔 여섯. 죽음의 문턱에서 이효정은 젊은 날 함께 항일운동을 했던 <경성 트로이카> 조직원들에 대한 회상에 자주 빠지곤 한다. 이효정과 그들이 추구했던 이념, 그들이 이루려고 했던 나라, 남과 북에서 모두 소외된 채 비극적인 최후를 맞이해야 했던 그들의 삶은 과연 어떤 의미였을까? 우리나라 현대사가 몸속 깊숙이 새겨져 있는 이효정의 생생한 육성 증언을 통해 굴절된 우리 현대사를 반추해본다.

EBS 3.1절 특집 '나의 사랑하는 나라'





EBS에서 만들어졌기 때문에, 이야기될 기회조차 갖지 못했다는 사실이 슬프다. 시청률 때문이다. 아마 극소수의 사람들이 이 프로그램을 보았을 것이다. 네이버에서는 고작 한 개의 리뷰만이 검색된다. 근현대사 교과서를 중심으로 '역사'에 대한 논쟁이 뜨거운 요즘, EBS에서 야심차게 기획한 특집은 이렇게 묻혔다.

사실 제목만 보면 오해하기 쉽다. 애국심을 고취하는 3.1절 특집다큐라고 짐작할 것이다. 사실 편성표에는 '나의 사랑하는 나라'라는 제목이 적혀 있었다. 그러나 정작 방송 크레딧에는 '독립운동가 이효정, 나의 이야기'라고 바뀌었다. 이유는 알 수 없다. 다만 제작진의 어떤 '전략'이었던 것은 아닐까 추측해볼 뿐이다. '참한' 제목을 달고 시청자들에게 어필한 뒤, 전혀 뜻밖의 휴머니즘으로 이념 논쟁을 피해가고자 했던 것은 아닐까. 일제시대 독립운동가 집안에서 태어나, 좌익 활동을 중심으로 독립운동에 헌신한 이효정 선생이 주인공이기 때문이다. 조중동에서 들고 일어날 소재다.

작품은 과거 이효정 선생의 사진 자료와 당시 푸티지로 영상을 구성하고 있다. 그리고 아흔 나이에 여전히 정정한 선생의 인터뷰를 담고 있다. 인터뷰는 한 나절 가량 이뤄졌다. 촬영 하루. 제작비는 대단히 적게 들었을 것이다. 

그러나 '편의주의'라고 치부하기엔 제작진의 고민이 깊다. 그리고 시의성 있다. 평생을 바르게 살아온 노인의 얼굴에서 오는 감동도 크다.

이 작품은 '이효정' 선생 1인칭 시점의 내레이션을 취하며 '개인사'를 통한 역사를 '이야기'하고 있다. 물론 내레이션은 성우가 맡았다. 이효정 선생의 어린 시절에서, 연애편지를 받았던 기억, 치기어렸지만 진정성으로 충만했던 저항의 기억, 그 저항 과정에서 친구와 다툰 이야기까지. 이효정 선생은 인터뷰에서 투쟁의 기억과 눈부신 일상의 기억들을 같은 톤으로 이야기한다. 특별히 분노하거나 특별히 부끄러워하지도 않는다. 담담하지만 꼿꼿한 기개로 제작진에게 시종 존댓말로 이야기하고 있었다. 멋진 주인공이다. 1인칭 내레이션을 채택하지 않을 이유가 없다. 1인칭 내레이션은 때때로 자신의 위치를 과도하게 dramatize한다. 누구나 자신의 내러티브를 갖고 있지만 때때로 그것은 정말 '자기 자신만의 이야기'에 그치고 만다. 그래서 많은 다큐멘터리들이 3인칭 내레이션을 선택한다. 하지만 이효정 선생은 그렇게 말하지 않는다. 아흔이라는 나이 때문인지, 타고난 성정 때문인지, 이제는 시간만이 곧 운명인 이로서 이미 자신의 인생을 객관화, 상대화하고 있었던 것이다.

왕빙 감독의 <중국 여인의 연대기>와 사실 유사하다. 왕빙이라는 이 소심한 감독은 자신의 상처를 털어놓는 늙은 여인 앞에서 한없이 소심했다. 그리고 그것은 '이야기에의 집중'과 '대상에의 존경'을 불러일으키는 대단히 윤리적인 영화적 태도로 추앙받았다. '영화관'이라는 상영공간에서 관객들을 3시간이 넘도록 한 노인네의 이야기에 집중시켰던 것도 대단한 일이었다. 

<중국여인의 연대기/Fengming, a Chinese Memoir(2007)>의 주인공 펭밍.



그러나 나는 '겸손함의 범재'(사실 나는 그가 '천재'라기 보다는 참을성 많은 작가라고 생각한다)인 왕빙일 지라도 이효정 선생을 만났더라면 그렇게 찍지 않았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이효정 선생의 이야기에는 '드라마'가 없다. 이야기들은 에피소드, 일화로 이효정 선생님에 의해 이미 정리되어 있다. 드라마는 오히려 최소화되어 있다. 이미 체념한 무기력한 늙은이라서 그렇다고 보기엔 무리다. 그녀는 여전히 한겨레를 읽고 있었다. (눈밝은 나는 이준구의 칼럼임을 알아챘다. 좁은 단칸방엔 여전히 책들이 쌓여 있었다. 그것이 설정이었다면 할 말은 없다.)

드라마는 오히려 '현실'에 있었다. 그녀는 여전히 자신을 비롯한 동지들의 좌익활동들에 대해 세상에 드러낼 수 없다고, 그러면 큰일난다고 말하고 있었다. 단호했다. 작품의 마지막에서 이효정 선생이 누워 잠에 드는 모습을 담아내는 카메라 위로, "이것이 나의 이야기입니다. 어쩌면 방송이 안 될 지도 모르겠어요."라는 내레이션이 흐른다.

결국 다큐멘터리는 좋은 주인공에 있다는 것을 느낀 작품이었다. 그렇지만 연출가의 몫은 여전히 남아 있다. 좋은 주인공을 갖고도 작품을 망치는 경우도 종종 있다. <나의 마음은 지지 않았다>가대표적이다(이 작품에 대해 생각할 때마다 짜증과 화가 치밀어오른다.).  이대섭 피디는 텔레비전에 맞는 미학적 범위 내에서, 대상과 세상에 대한 경제적이고도 감동적인 작품을 만들어냈다. 

Friday, March 6, 2009

'문화매거진?',마티아스 웨커, "안티텔레비전?"

전체적으로 보면, 매거진 포맷을 통해 클루게는 각 테마를 아주 잘 다룰 수 있게 되었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연상 몽타주 기술을 통해 서로 전혀 관계가 없어보이는 테마와 자료들 사이에 연관관계를 만들어내고 시청자로 하여금 스스로 그러한 연관관계를 찾도록 북돋운다. (...)그의 매거진에서 생각하는 문화란 인간의 모든 창조 활동을 포함하는 광범위한 개념이기에 다룰 수 있는 테마 영역이 거의 무한하다. (...) 클루게가 테마들을 가능한 한 특이하고 흥미롭고 수수께끼같이 묘사하는 전략을 추구하기 때문에 아주 통상적인 대상들조차도 놀라움을 주는 그는 기존의 문화 매거진들이 가진 사실적, 저널리즘적 양식과 일정한 거리를 취하며, 상업 방송국들의 대중적인 프레젠테이션 형식과 가까워지게 된다. 예를 들면 모차르트의 오페라 에 관한 방송물은 '착한 소녀가 되기 위한 100가지 묘책'이라는 제목을 지니며, 무대 장치 전문가 Erich Wonder가 하이너 뮐러와의 공동작업에 대해 이야기하는 대담에는 '표범은 항상 앞으로만 달리다'라는 제목이 달렸고, 잘츠부르크 축제 위원장 Gerard Mortier와의 인터뷰는 '프리마돈나들의, 폭풍우를 견뎌내는 개혁자의 인내심'이라는 제목으로 방영되었다. 클루게가 호기심을 불러일으키기 위해 혹은 혼란을 야기하기 위해 노력한다는 점은 분명하다. (...)클루게는 처음에는 시청자들이 불확실한 상황 속에 있도록 방관하며 시청자들의 인내심과 호기심에 기대를 건다.
147-149쪽

공영방송의 문화 프로그램 운영자들이 이 프로그램들의 진지한 저널리즘적 이미지를 포기하지 않으면서 고급 문화에 대한 두려움과 불안감을 없애려고 끊임없이 애쓰는 반면, 클루게는 오히려 알려지지 않은 것에 대한 불특정한 호기심에 관심을 갖는다. 그의 매거진들은 사실적 정보가 아니라 놀라움과 특이함을 약속하는데, 이 때 접근 방식이 복잡할 수 있다는 점을 숨기지 않는다. 그러므로 공허한 약속이 아니라는 점에 대한 신뢰감과 인내심은 시청자가 지녀야 할 필수적 전제조건이 된다.
149쪽.

문화 산업에 대한 해설이 아니라 철저하게 독자적이고 미학적인 경험을 전달하는 일이다.
154쪽.

클루게는 언제나 다른 사람들이 전혀 기대하지 못한 곳에서 시사적 테마와의 연관성을 찾아낼 줄 아는 능력을 가지고 있었다. (...)"아이다 125년"이라는 제목으로 방영된 매거진. 녹화된 오페라 아이다의 공연실황을 보여준다. 이 프로그램은 오페라의 공연, 가수, 오케스트라의 수준 혹은 연출의 특별한 아이디어 등에 대해 비평하거나 보도하는 데 관심이 있는 것이아니라, 이미 제목이 암시하듯 오페라 장체, 곧 오페라의 테마와 수용의 역사에 있다. (...)오페라 공연 실황 필름은 테마를 제시하기 위한 자료로 사용될 뿐이다. /그러나 시청자들은 그 테마가 정확히 무엇인지를 나중에 가서 알 수 있다. 제목이 나오기 전 화면에 등장하는 도입 텍스트는 125년에 이르는 오페라의 수용 역사와, 오페라 제작을 의뢰햇지만 이미 오래 전에 멸망한 이집트 왕국을 극명하게 대조시키고 있다. 이 매거진은 1872년 오페라가 초연되었던 카이로의 오페라 하우스 화제와 관련된 영상들을 보여줌으로써, 영원함과 덧없음의 대립을 또 한번 상기시킨다. (...)수에즈 운하 건설과 1956년 이 운하의 국유화에 관한 기록물들. (...)그러나 이 기록물들은 더 나아가 이 지역의 역사를 식민주의라는 맥락과 연관시키며, 이를 직접적으로 언급하지도 않으면서도 오페라의 기본 갈등 구조와의 관련성을 끌어낸다. 이 오페라는 아이다를 전쟁에서 패배한 민족의 대변인으로 만들며 그녀와 전쟁 승리자의 고나계를 이야기의 출발점으로 만드는 것이다. 
150-151쪽

하지만 클루게는 그 이전에 두 개의 에피소드를 더 추가하는데, 이 에피소드들은 테마 영역을 한층 더 복잡하게 만든다. 다시 말해, 옛 무성영화에서 따온 장면들이-아마도 1921년에 만들어진 Ernst Lubitsch의 <파라오의 아내>인 듯하다- 매거진 전체에 걸쳐 오페라 장면들과 나란히 등장하는데, (...) 아이다 이야기의 대안적 버전을 보여주기 위해 사용된다. 민중이 개입해 두 연인을 감옥에서 풀어주지만, 이 두 사람은 "사랑 외엔 아무 것에도 관심이 없었다는 점을" 확인하게 된다. 실망은 분노로 변하고, 분개한 집단이 두 여인에게 돌팔매질을 가하는 장면에서 절정에 이른다. (...) 아이다 이야기의 대안적인 버전의 가능성을 실험하고 있지만, 어쨌든 오페라의 줄거리와 마찬가지로 비극적인 결말을 지닌다. 
비극적인 결과를 낳게 되는 두 연인과 그들의 주변 환경간의 갈등은 식민주의, 전쟁, 혁명이라는 복합적 테마와 암시적으로 연결되어 있으며, 이 프로그램의 테마에 대한 골격을 형성한다. 물론 이런 다양한 요소들은 시청자들이 인식하고 연고나관계를 찾아내야 한다.
153-154쪽.

클루게는 오히려 주변적인 것처럼 보이는 것이나 뒤에 숨겨져 잇는 것, 일화나 기술적 세부 사항, 더 나아가 다른 테마 영역들과의 예기치 않은 연관 관계 등에 관심을 가진다. 
155쪽

발췌된 부분을 가지고 본래 자굼의 맥락을 암시하기는 하지만, 이 부분을 원자재로 사용하면서 원래의 작품에서는 드러나지 않는 다양하고 새로운 문맥을 삽입해 넣는다. 그는 작품의 종합적인 면을 고려하기보다는 작품의 구성 요소들 속에 함유된 매력들을 자유롭게 해방시키고 새로운 목적을 위해 사용될 수 있도록 만들기 위해 작품을 산산조각낸다. (...)클루게의 '문화 매거진'에서 '문화'는 작품의 수용이자 해석일 뿐 아니라 작품의 창작이기도 하며, 사회적인 삶을 조직하는 일인 동시에 그러한 조직의 역사를 기억해내는 일이며, 결국은 인간 문화와 그것의 자연적 토대를 연결짓는 작업이기도 하다.
160쪽.

클루게 매거진이 일반적으로 '문화 매거진'이라고 불리는 장르와는 달리 보도나 설명에 중심을 두고 있는 것이 아니라 문화적 생산물의 생산 과정에 직접 참여한다는 것이다. (...)설명이나 생산적 습득 혹은 지속적 가공이 서로 분리되지 않은 채 섞여 있는 새로운 형식을 만들어낸다.
161쪽.


'Dispositiv로서의 텔레비전-텔레비전 현상에 대한 고찰', 마티아스 웨커, "안티텔레비전?"

매체의 중요한 특성들은 수용 과정, 배급 구조, 그리고 기술적, 제도적 생산 토대와의 상호 작용 속에서 인식할 수 있다는 전제로부터 출발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디스포지티프로서의 텔레비전이라는 구상은 녹음기기, 송신 및 수신기기뿐 아니라 생산자와 시청자까지도 하나의 제도적 연관 관계 속에서, 다시 말해 텔레비전 매체의 기능 방식과 하나의 제도적 연관 관계 속에서, 다시 말해 텔레비전 매체의 기능 방식과 지속성이 비로고 가능해지는 그 연관관계 속에서 고려한다.
105-106쪽.

텔레비전은 영화와 분명하게 다른 고유의 미학을 개발해냈는데, 그 미학의 특징은 자세한 설명을 포기하고 클로즈업에 치중하며 빠르게 장면을 진행시키는 데 있다. 또한 텔레비전 시청자는 영화에서보다 코멘트나 대화에 더 집중하게 되는데, 이러한 코멘트나 대화가 화면을 종종 고유 의미가 없는 단순한 삽화로 전락시켜 버리곤 한다.
107쪽

텔레비전으로 인해 외부 세계는 마치 필터를 거치지 않은 것처럼, 그리고 지금까지는 사회로부터 분명하게 분리되어 있던 소비자의 사적 공간 속으로 강력한 힘을 갖고 들어오게 된다. 하지만 이로써 공론장 자체가 침식되는 것은 아니며, 오히려 공론장과 사적 영역이라는 기존의 구분이 해체되어 두 영역의 요소가 섞여 있는 새로운 영역이 만들어진다는 것이다. 이러한 진행 과정은 행동 방식과 의사소통 형태에 나타나는 변화가 증명한다.(...)텔레비전은 장기적으로 볼 때 시청자가 새로운 행동 방식과 의사소통 형태를 갖도록 만든다. (...)사적이면서 공적인 영역의 구축을 위한 아주 분명한 징후, 혹은 공적인 영역과 사적인 영역 사이의 경계가 무너지는 현상으로 인한 일반적 혼란의 징후는 토크쇼들이 특히 잘 보여주고 있다. 
109쪽

시청자의 선택 가능성이 점차 증가하면서 시청자와 텔레비전의 관계를 주어진 자극에 의한 시청자의 자동적 반응이라는 도식으로 파악하는 것이 아니라, 텔레비전을 시청자 자신이 활동할 수 있는 영역과 조건으로 이해하는 것이 더욱 절실해졌다. (...)곧 '고삐가 풀린' 능동적 시청자 상이 제기된다.(...)흐름을 거슬러 거꾸로 읽으며, 이를 독자적 의미생산의 기초로 삼는다. 대개 보도 및 르포 프로그램에서 흔히 나타나는 "영상과 해설의 일치라는 환상은 영상과 텍스트를 대립적으로 읽고 연관 관계와 그 안에 들어 있는 의미 구성을 대립적으로 이해하는 시청자의 경향"에 의해 깨지기 시작한다.(...)적극적이고 독립적인 시청자라는 테제의 가장 중요한 논거는 최근 방송 채널 증가에 대한 반작용에서 나타난 수용방식의 변화이다. (...)스위칭, 재핑, 혹은 채널 호핑.(...)
127쪽.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극을 연속적으로 공급하는 메커니즘으로서 텔레비전의 특징을 규정하고 수용 상황 자체를 구조화하는 전체 프로그램은 여전히 남아 그 기능을 수행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128쪽

그럼에도 불구하고 텔레비전을 켜고 채널을 돌리는 일을 '능동적인 활동'이라고 간주하기 위해서 적어도 분명히 해 두어야 할 점은, 시청자들은 그러한 활동을 하기 위해-다른 활동에 비해-일반적으로 아주 적게 관여하기만 해도 되며, 최소한의 경제적, 육체적, 정서적 혹은 지적인 비용만을 지불해도 된다는 것이다. 이렇게 적극적인 활동을 위한 문턱이 낮다는 점으로 인해 텔레비전은 언제나 다가갈 수 있지만 종종 단지 지엽적으로만 사용되는 '배경매체'로서 자리잡게 되었다.
129쪽.

다시말해, 텔레비전은 '문화적 행사'의 기능을 벗어나 '상품과 서비스'로 자신의 형태를 바꾸어갔다.
130쪽

그러나 동시에 분명해진 점은, 텔레비전이-점차로 상업화된 '이중적' 조직 형태를 지니게 되었을지라도- 소수의 시청자들을 배려하는 대안적 생산물 제작을 위한 토대를 제공해야 한다는 것이다. 텔레비전의 문턱이 낮기 때문에 많은 시청자들이 공적인 공간에서 열리는 행사나, 도서류, 영화 혹은 카세트의 형태로 수용하기에는 너무나 비용이나 시간이 많이 들거나 불편한 것들이 프로그램으로 만들어져 제공되면 기꺼이 시청하게 되는 것이다.
132쪽

지금 인터넷 네트워크 방식의 의사소통의 가능성에 직면해 또 다시 -이미 70년대 초반에 그랬듯- '상호작용이 가능한' 텔레비전에 대해 꿈꾸는 사람들이 있다. (...)그러나 이들은 아마 두 가지 시스템간의 범주적 차이를 간과하고 있는 듯하다. 테렐비전은 미리 제작된 상당히 복합적이고 광범위한 정보에 대한 시청자들의 요구를 중앙 집중적 방식의 구조 속에서 채워주며, 그렇기 때문에 자유롭고 자발적인 네트워크 방식의 의사소통은 아주 예외적인 경우에만 가능하다. 만약 '대화적인' 텔레비전이 있다면 그것은 텔레비전이 아니라 화상 전화나 인터넷 혹은 새로운 주문 서비스라 불러야 할 것이다.
132쪽.


정의들

노동자들이 면도날을 생산하는 것을 보여주는 영화는 산업영화다. 그러나 똑같이 물리적인 생산공정을 다루고 있다고 할 지라도 반복적이고 정밀한 상품생산이 노동자들에게 끼치는 영향을 보여주고 관객들에게 사회적으로 비판적인 결론을 이끌어내도록 한다면 이는 다큐멘터리 영화다. –마이클 래비거

 

"나는 영화의 눈이다. 나는 기계의 눈이다....... 나의 사명은 세계를 새롭게 인식하고, 지각할 수 있는 매체를 창조하는 것이다. 나는 새로운 방법과 기술에 의해 당신들에게 미지의 세계를 보여줄 것이다."

카메라가 포착한 객관적 사실은 편집을 통해 예술성을 가진 작품이 된다.”

-지가베르토프 키노아이 선언 


 “현실세계의 창조적 처리 creative treatment of actualities” “예술이란 현실의 거울이 아니라 현실을 다듬는 장치”(브레히트) -존그리어슨

 

다큐멘터리 영화란 경제, 문화, 인간관계의 영역에서 인간의 지식과 이해를 넓히고 그 욕구를 자극시키며 문제와 그 해결책을 제시하기 위한 목적을 가지고 이성이나 감성에 호소하기 위해서 사실의 촬영이나 진지하고 이치에 맞는 재구성을 통해 해석되는 사실의 모든 면을 영화화하는 모든 방법을 말한다. -1948 체코슬로바키아 제1회 다큐멘터리 세계연맹대회

 






카메라는 과연 있는 그대로 사실을 보여주는가? 아니다. 다큐멘터리는 다큐멘터리스트와 대상이 의논하여 새로운 사실을 발견해 가는 과정’이다. 아니다. 다큐멘터리는 다큐멘터리스트와 대상이 의논하여 새로운 사실을 발견해 가는 과정을 관람자와 함께 하는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