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riday, March 6, 2009

'Dispositiv로서의 텔레비전-텔레비전 현상에 대한 고찰', 마티아스 웨커, "안티텔레비전?"

매체의 중요한 특성들은 수용 과정, 배급 구조, 그리고 기술적, 제도적 생산 토대와의 상호 작용 속에서 인식할 수 있다는 전제로부터 출발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디스포지티프로서의 텔레비전이라는 구상은 녹음기기, 송신 및 수신기기뿐 아니라 생산자와 시청자까지도 하나의 제도적 연관 관계 속에서, 다시 말해 텔레비전 매체의 기능 방식과 하나의 제도적 연관 관계 속에서, 다시 말해 텔레비전 매체의 기능 방식과 지속성이 비로고 가능해지는 그 연관관계 속에서 고려한다.
105-106쪽.

텔레비전은 영화와 분명하게 다른 고유의 미학을 개발해냈는데, 그 미학의 특징은 자세한 설명을 포기하고 클로즈업에 치중하며 빠르게 장면을 진행시키는 데 있다. 또한 텔레비전 시청자는 영화에서보다 코멘트나 대화에 더 집중하게 되는데, 이러한 코멘트나 대화가 화면을 종종 고유 의미가 없는 단순한 삽화로 전락시켜 버리곤 한다.
107쪽

텔레비전으로 인해 외부 세계는 마치 필터를 거치지 않은 것처럼, 그리고 지금까지는 사회로부터 분명하게 분리되어 있던 소비자의 사적 공간 속으로 강력한 힘을 갖고 들어오게 된다. 하지만 이로써 공론장 자체가 침식되는 것은 아니며, 오히려 공론장과 사적 영역이라는 기존의 구분이 해체되어 두 영역의 요소가 섞여 있는 새로운 영역이 만들어진다는 것이다. 이러한 진행 과정은 행동 방식과 의사소통 형태에 나타나는 변화가 증명한다.(...)텔레비전은 장기적으로 볼 때 시청자가 새로운 행동 방식과 의사소통 형태를 갖도록 만든다. (...)사적이면서 공적인 영역의 구축을 위한 아주 분명한 징후, 혹은 공적인 영역과 사적인 영역 사이의 경계가 무너지는 현상으로 인한 일반적 혼란의 징후는 토크쇼들이 특히 잘 보여주고 있다. 
109쪽

시청자의 선택 가능성이 점차 증가하면서 시청자와 텔레비전의 관계를 주어진 자극에 의한 시청자의 자동적 반응이라는 도식으로 파악하는 것이 아니라, 텔레비전을 시청자 자신이 활동할 수 있는 영역과 조건으로 이해하는 것이 더욱 절실해졌다. (...)곧 '고삐가 풀린' 능동적 시청자 상이 제기된다.(...)흐름을 거슬러 거꾸로 읽으며, 이를 독자적 의미생산의 기초로 삼는다. 대개 보도 및 르포 프로그램에서 흔히 나타나는 "영상과 해설의 일치라는 환상은 영상과 텍스트를 대립적으로 읽고 연관 관계와 그 안에 들어 있는 의미 구성을 대립적으로 이해하는 시청자의 경향"에 의해 깨지기 시작한다.(...)적극적이고 독립적인 시청자라는 테제의 가장 중요한 논거는 최근 방송 채널 증가에 대한 반작용에서 나타난 수용방식의 변화이다. (...)스위칭, 재핑, 혹은 채널 호핑.(...)
127쪽.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극을 연속적으로 공급하는 메커니즘으로서 텔레비전의 특징을 규정하고 수용 상황 자체를 구조화하는 전체 프로그램은 여전히 남아 그 기능을 수행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128쪽

그럼에도 불구하고 텔레비전을 켜고 채널을 돌리는 일을 '능동적인 활동'이라고 간주하기 위해서 적어도 분명히 해 두어야 할 점은, 시청자들은 그러한 활동을 하기 위해-다른 활동에 비해-일반적으로 아주 적게 관여하기만 해도 되며, 최소한의 경제적, 육체적, 정서적 혹은 지적인 비용만을 지불해도 된다는 것이다. 이렇게 적극적인 활동을 위한 문턱이 낮다는 점으로 인해 텔레비전은 언제나 다가갈 수 있지만 종종 단지 지엽적으로만 사용되는 '배경매체'로서 자리잡게 되었다.
129쪽.

다시말해, 텔레비전은 '문화적 행사'의 기능을 벗어나 '상품과 서비스'로 자신의 형태를 바꾸어갔다.
130쪽

그러나 동시에 분명해진 점은, 텔레비전이-점차로 상업화된 '이중적' 조직 형태를 지니게 되었을지라도- 소수의 시청자들을 배려하는 대안적 생산물 제작을 위한 토대를 제공해야 한다는 것이다. 텔레비전의 문턱이 낮기 때문에 많은 시청자들이 공적인 공간에서 열리는 행사나, 도서류, 영화 혹은 카세트의 형태로 수용하기에는 너무나 비용이나 시간이 많이 들거나 불편한 것들이 프로그램으로 만들어져 제공되면 기꺼이 시청하게 되는 것이다.
132쪽

지금 인터넷 네트워크 방식의 의사소통의 가능성에 직면해 또 다시 -이미 70년대 초반에 그랬듯- '상호작용이 가능한' 텔레비전에 대해 꿈꾸는 사람들이 있다. (...)그러나 이들은 아마 두 가지 시스템간의 범주적 차이를 간과하고 있는 듯하다. 테렐비전은 미리 제작된 상당히 복합적이고 광범위한 정보에 대한 시청자들의 요구를 중앙 집중적 방식의 구조 속에서 채워주며, 그렇기 때문에 자유롭고 자발적인 네트워크 방식의 의사소통은 아주 예외적인 경우에만 가능하다. 만약 '대화적인' 텔레비전이 있다면 그것은 텔레비전이 아니라 화상 전화나 인터넷 혹은 새로운 주문 서비스라 불러야 할 것이다.
13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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