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uesday, March 27, 2012

90년대의 맥락

차우진 트위터에서.

‎87년 해외여행자율화, 90년 일본출판개방(드래곤볼 정식판), 방송법 개정(SBS, 케이블TV), 유니텔/하이텔, 삼성+LG 영화/음악산업진출 같은 걸 빼고 90년대 대중문화와 세대를 얘기할 수 있을까. 근데 아직도 서태지만...

Thursday, March 1, 2012

국가간체계에서 정책 차이의 발생

"헤게모니 국가일수록 자유경쟁, 자유무역 이데올로기를 내세우게 되고, 추격하는 국가일수록 보호주의를 내세우는 것이 일반적입니다. 특히 반주변부 국가에서 보호주의적 정책이 가장 강하게 나타나는데, 이는 자국의 산업을 보호해서 앞선 국가들을 따라잡으려는 강한 욕구를 지니기 때문입니다. 그렇지만 이는 상승에 성공하기 위해서라기보다는 추락하지 않기 위해서 그렇게 되는 경우가 더 많다고 하겠습니다.
 국가들마다 정책에서 차이가 나는 이유는 국가간체계의 위계 속에 놓여있는 국가의 위상 차이가 국가가 수행할 수 있는 정책 범위를 제약하고 있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백승욱, <자본주의 역사 강의> 195쪽)

주변부 국가 정책 논리의 종속성.

월러스틴과 오늘날 문화생산자 논의의 한계

"월러스틴은 노동의 영역을 실질적으로 포섭했을 때의 변화를 사실상 정치적 포섭의 문제로 대체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러니까 이 문제를 자유주의에 의해서 노동자들이 어떻게 포섭되어왔는가라는 정치적 차원의 문제로 가지고 가기 때문에, 그 이면에 깔린 문제들로 더 들어가지 않는다는 것이죠. 따라서 분석이 여전히 분배 차원에 머물러 있고, 생산의 영역으로 파고들어간 것은 아닌데,  이 한계는 브로델과 직접적으로 연결된다고 볼 수 있습니다. 브로델의 한계를 이야기하면서, 브로델에게 독점의 문제는 영역이 계속 바뀌어가면서 나타나는 몫의 배분 문제이지, 생산구조 자체의 전화 문제는 아니라고 했죠. 이와 같은 문제가 월러스틴에게도 반복되는데, 그 이유는 앞서도 지적했듯이 월러스틴의 초기 입론이 대부분 농업자본주의에 맞춰져 있다는 것 그리고 분석의 시대가 1840년에 중단된 상태라는 것과 연관될 것입니다." (백승욱, <자본주의 역사 강의>, 244-5)


문화 노동자들에 대한 착취를 말하는 오늘날 미디어 생산자 연구자들 역시
노동자들의 형식적 포섭과 더불어 실질적 포섭을 논함에 있어,
정치적 차원의 문제로 환원하는 것은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