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aturday, March 7, 2009

EBS 3.1절 특집 '나의 사랑하는 나라'





EBS에서 만들어졌기 때문에, 이야기될 기회조차 갖지 못했다는 사실이 슬프다. 시청률 때문이다. 아마 극소수의 사람들이 이 프로그램을 보았을 것이다. 네이버에서는 고작 한 개의 리뷰만이 검색된다. 근현대사 교과서를 중심으로 '역사'에 대한 논쟁이 뜨거운 요즘, EBS에서 야심차게 기획한 특집은 이렇게 묻혔다.

사실 제목만 보면 오해하기 쉽다. 애국심을 고취하는 3.1절 특집다큐라고 짐작할 것이다. 사실 편성표에는 '나의 사랑하는 나라'라는 제목이 적혀 있었다. 그러나 정작 방송 크레딧에는 '독립운동가 이효정, 나의 이야기'라고 바뀌었다. 이유는 알 수 없다. 다만 제작진의 어떤 '전략'이었던 것은 아닐까 추측해볼 뿐이다. '참한' 제목을 달고 시청자들에게 어필한 뒤, 전혀 뜻밖의 휴머니즘으로 이념 논쟁을 피해가고자 했던 것은 아닐까. 일제시대 독립운동가 집안에서 태어나, 좌익 활동을 중심으로 독립운동에 헌신한 이효정 선생이 주인공이기 때문이다. 조중동에서 들고 일어날 소재다.

작품은 과거 이효정 선생의 사진 자료와 당시 푸티지로 영상을 구성하고 있다. 그리고 아흔 나이에 여전히 정정한 선생의 인터뷰를 담고 있다. 인터뷰는 한 나절 가량 이뤄졌다. 촬영 하루. 제작비는 대단히 적게 들었을 것이다. 

그러나 '편의주의'라고 치부하기엔 제작진의 고민이 깊다. 그리고 시의성 있다. 평생을 바르게 살아온 노인의 얼굴에서 오는 감동도 크다.

이 작품은 '이효정' 선생 1인칭 시점의 내레이션을 취하며 '개인사'를 통한 역사를 '이야기'하고 있다. 물론 내레이션은 성우가 맡았다. 이효정 선생의 어린 시절에서, 연애편지를 받았던 기억, 치기어렸지만 진정성으로 충만했던 저항의 기억, 그 저항 과정에서 친구와 다툰 이야기까지. 이효정 선생은 인터뷰에서 투쟁의 기억과 눈부신 일상의 기억들을 같은 톤으로 이야기한다. 특별히 분노하거나 특별히 부끄러워하지도 않는다. 담담하지만 꼿꼿한 기개로 제작진에게 시종 존댓말로 이야기하고 있었다. 멋진 주인공이다. 1인칭 내레이션을 채택하지 않을 이유가 없다. 1인칭 내레이션은 때때로 자신의 위치를 과도하게 dramatize한다. 누구나 자신의 내러티브를 갖고 있지만 때때로 그것은 정말 '자기 자신만의 이야기'에 그치고 만다. 그래서 많은 다큐멘터리들이 3인칭 내레이션을 선택한다. 하지만 이효정 선생은 그렇게 말하지 않는다. 아흔이라는 나이 때문인지, 타고난 성정 때문인지, 이제는 시간만이 곧 운명인 이로서 이미 자신의 인생을 객관화, 상대화하고 있었던 것이다.

왕빙 감독의 <중국 여인의 연대기>와 사실 유사하다. 왕빙이라는 이 소심한 감독은 자신의 상처를 털어놓는 늙은 여인 앞에서 한없이 소심했다. 그리고 그것은 '이야기에의 집중'과 '대상에의 존경'을 불러일으키는 대단히 윤리적인 영화적 태도로 추앙받았다. '영화관'이라는 상영공간에서 관객들을 3시간이 넘도록 한 노인네의 이야기에 집중시켰던 것도 대단한 일이었다. 

<중국여인의 연대기/Fengming, a Chinese Memoir(2007)>의 주인공 펭밍.



그러나 나는 '겸손함의 범재'(사실 나는 그가 '천재'라기 보다는 참을성 많은 작가라고 생각한다)인 왕빙일 지라도 이효정 선생을 만났더라면 그렇게 찍지 않았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이효정 선생의 이야기에는 '드라마'가 없다. 이야기들은 에피소드, 일화로 이효정 선생님에 의해 이미 정리되어 있다. 드라마는 오히려 최소화되어 있다. 이미 체념한 무기력한 늙은이라서 그렇다고 보기엔 무리다. 그녀는 여전히 한겨레를 읽고 있었다. (눈밝은 나는 이준구의 칼럼임을 알아챘다. 좁은 단칸방엔 여전히 책들이 쌓여 있었다. 그것이 설정이었다면 할 말은 없다.)

드라마는 오히려 '현실'에 있었다. 그녀는 여전히 자신을 비롯한 동지들의 좌익활동들에 대해 세상에 드러낼 수 없다고, 그러면 큰일난다고 말하고 있었다. 단호했다. 작품의 마지막에서 이효정 선생이 누워 잠에 드는 모습을 담아내는 카메라 위로, "이것이 나의 이야기입니다. 어쩌면 방송이 안 될 지도 모르겠어요."라는 내레이션이 흐른다.

결국 다큐멘터리는 좋은 주인공에 있다는 것을 느낀 작품이었다. 그렇지만 연출가의 몫은 여전히 남아 있다. 좋은 주인공을 갖고도 작품을 망치는 경우도 종종 있다. <나의 마음은 지지 않았다>가대표적이다(이 작품에 대해 생각할 때마다 짜증과 화가 치밀어오른다.).  이대섭 피디는 텔레비전에 맞는 미학적 범위 내에서, 대상과 세상에 대한 경제적이고도 감동적인 작품을 만들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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