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riday, October 23, 2009

<사당동 더하기 22> 메모

조은 감독은 63살. 65학번. 65학번이면 당시엔 어마어마한 집안 출신이었다는 말이다. 거의 여왕님이었다는 말이다. 이 영화는 박경태(<나와 부엉이>)를 비롯한 동국대 사회학과, 영화학과 학생들을 데려다가 시킨 22년간의 (착취의) 기록. 사당동 빈민촌에 살다가 그 지역이 개발되면서 다른 지역으로 옮겨간 수많은 철거민들 중 유일하게 상계동 임대아파트에 입성한 가족을 22년동안 기록/지배 했다.


엊그제 네이트 메인에 걸린 이 영화 관련 기사.


-마지막 장면에서 장남 영주가 필리핀 신부로부터 낳은 아이를 두고 "얘는 교수처럼 거창한 거 말고 영어 선생이되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이것은 조은 교수와의 20년 간의 상호작용에서 온 결과일 수도 있음. 조은 교수가 좀더 그 가족들에게 '좋은' 사람이었다면, 그는 감히, 딸래미가 교수 됐으면 좋겠다, 고 말했을지도 모른다.

-마지막 closing says, "이것은 한 가족의 이야기이다. 그러나 단지 한 가족의 이야기만은 아니다."
딱 이 만큼의 책임감과 문제의식.


- 기사에서...
"애를 유산하려고 했는데 돈 몇 십만 원이 없으니까 한 달 두 달 기다리다가 애가 커졌지. 돈만 있으면 낳지 않았지." 손녀의 삶에 혀를 차는 정 할머니의 혼잣말도 조 교수의 카메라에 담겼다.
반면 바로 그 앞 부분에서...
한 달에 한 두 번은 꼭 시간을 내서 찾았고 명절이나 할머니 증손녀가 태어난 날 등 특별한 날도 놓치지 않았다.
그런데 조은은 낙태할 돈이 없어 애를 지우지 못한 은주를 보고만 있었다? 혹은 그냥 오랜만에 찾아갔을 때 그런 말을 할머니로부터 들은 것뿐이다? 대체 진실은 무엇?
오히려 이 장면이 '빈곤한 자'들의 '무개념'을 이야기하기 위한 한 에피소드처럼 보이는 이유는 무엇일까.


-아버지가 영화 극본가였던 유지나 교수(동국대)는 이 영화를 두고 엄청난 극찬을 했다고 한다. 그녀 역시 조은 교수와 같은 동네, 즉 여왕네 출신.


-80분 버전에서도, 영주가 필리핀 가서 대학원생들과 포르노보는 장면이 들어 있나?

-시간이 지날 수록 조은 감독은 어떻게 변했을까. 그 20년 넘는 시간 동안. 아마 좀더 그들에 대해 지배적인 사람이 됐을 거다. 할머니가 있을 때 못 들었던 보다 내밀한 이야기들을 들을 수 있는 위치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