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uesday, November 8, 2011

어떤 환멸만을

인류학자들이 친절하고 사람좋은 듯 보이는 게 다 이유가 있다. 낯선 필드에 들어가서, 다른 사람들과 다른 문화를 어떻게든 이해하려고 노력하는 가운데, 그들에 대한 평가는 일단 보류하기 때문이다. 나는 바로 그 가운데에서 지식이 생산된다고 생각한다. "어, 이상해."라고 평가하는 순간 더이상의 이야기들은 나올 수가 없다. 하지만 한편으로, 그들과 완전히 동화한다고 해도 문제가 복잡해지는 건 마찬가지다. 공감하고 눈물을 뚝뚝 흘리는, 바로 그 마법적 착각의 순간은, 타자에 대한 착취적 식민주의와 종이 한 장 차이다.

페이스북을 하면서 정말 견딜 수 없는 것들이 있다. 다른 사람 욕하는 것들이 바로 그거다. 전철 옆자리에 앉았던 예의 없는 사람, 의식 없는 정치인 등등. 물론 나 역시도 이따금, 최대한 언어를 뭉툭하게 해서 타인에 대한 불평불만을 늘어놓음으로써 답답한 마음을 해소한다. 그런데 도무지 불평불만만이 그득한 사람들의 말들이 내 화면을 가득 채울 때는, 인류학자같은 '너그러움'을 발휘하기가 힘들다. 특히 알만한 사람들이 그럴 때는.

결국 페미니스트 아이들 얘기다. 정말 짜증이 솟구치지 않을 수가 없다. 페미니스트들은 자기가 두른 울타리 안에서 불평만 하다가 이내 어디론가 사라져버릴 것이다. 자기가 이제까지 살아온 그 안락한 '정치적으로 올바른' 세계 바깥은, 그들에게 모두 적이다. 노무현 생전에 누군가가 했던 "사회 나오면 노빠도 반갑다."라고 했던 건, 물론 '사회'를 특권화하는 발언이긴 했지만, 사실 옳은 이야기였다. 노빠가 실제로 적다는 게 아니라, 그 정체성을 드러내는 사람들이 적기도 하니까 말이다. 그런 의미에서, 페미니스트 사상가들의 해방적 비전을 이 풍진세상에 무리하게 투사하면서 실망하거나, 그런 식으로 매번 젠더 적대만을 읽어내는 똑같은 글들을 복제하는 아이들 때문에 정말 페북 탈퇴할까 싶다.

취업 합숙면접 자리에서 "오빠" 드립에 당황하면서 어떻게든 상황을 모면하려고 머리도 좀 써 보고, 경험연구를 해서 좀 나 자신을 박살내기도 하고, 그렇게 내가 계속 깨지는 가운데, 상대방을 이해하려는 작업들, 그리고 한독협 사람들과의 수많은 밤들. 그리고 나의 성숙한 친구와 성숙한 선생. 이들 아니었으면 나 역시 '환멸'의 놀이나 계속하고 있었을 게다. 다시한번 나는, 나의 지난 '헛짓'들을 후회하지 않게 된다. 그러면서 뭔가 정리가 되는 느낌이다. 언제나 나를 괴롭혀왔던 환멸은 사실 '사람'에 대한 환멸이 아니었던 것같다. 그것은 '이미지'에 대한 환멸이었다. 그래. 앞으로 '이미지'에 대한 환멸은 하되, 사람에 대한 환멸은 되도록 삼가야겠다. 물론, 이명박 팬클럽인 강남 출신 아이들이라면 좀 어렵긴 하겠다.

이로써 이 글 역시 '불평'하는 글이 되고 마는 이 역설. 사람에 대한 환멸을 드러내고 마는 이 역설. 그래. 나라고 무엇이 더 다르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