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ursday, March 1, 2012

월러스틴과 오늘날 문화생산자 논의의 한계

"월러스틴은 노동의 영역을 실질적으로 포섭했을 때의 변화를 사실상 정치적 포섭의 문제로 대체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러니까 이 문제를 자유주의에 의해서 노동자들이 어떻게 포섭되어왔는가라는 정치적 차원의 문제로 가지고 가기 때문에, 그 이면에 깔린 문제들로 더 들어가지 않는다는 것이죠. 따라서 분석이 여전히 분배 차원에 머물러 있고, 생산의 영역으로 파고들어간 것은 아닌데,  이 한계는 브로델과 직접적으로 연결된다고 볼 수 있습니다. 브로델의 한계를 이야기하면서, 브로델에게 독점의 문제는 영역이 계속 바뀌어가면서 나타나는 몫의 배분 문제이지, 생산구조 자체의 전화 문제는 아니라고 했죠. 이와 같은 문제가 월러스틴에게도 반복되는데, 그 이유는 앞서도 지적했듯이 월러스틴의 초기 입론이 대부분 농업자본주의에 맞춰져 있다는 것 그리고 분석의 시대가 1840년에 중단된 상태라는 것과 연관될 것입니다." (백승욱, <자본주의 역사 강의>, 244-5)


문화 노동자들에 대한 착취를 말하는 오늘날 미디어 생산자 연구자들 역시
노동자들의 형식적 포섭과 더불어 실질적 포섭을 논함에 있어,
정치적 차원의 문제로 환원하는 것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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