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환멸은 결국 나를 죽여버리는 게 아닐까 생각한다. 오늘 수업에서 교수는 진심으로 궁금하다는 듯이 '슬럿워크'에 대해 물었다. 나는 '노 코멘트'라고 말했다. 노 코멘트라고 곧잘 말하던 사내애가 있었다. 그 아이는 뭔가 곤란하지만 거짓말을 할 수는 없을 때 노코멘트라고 말했었다.
사회학의 사회적 역할에 대해 많은 선생님들이 강조한다. 내가 긴밀하게 연관을 맺고 있는 필드 역시 바로 그러한 액티비즘의 산물이자, 여전히 오만 가지 액티비즘의 당당한 주체이다. 그러나 언제나 나의 고독은 내가 '더 나은 세계'를 위해 글을 쓰지 않는다는 데에서 온다. 더 나은 세계를 그리는 이들에 대한 적대에서 내 글은 출발한다고 쓰는 게 차라리 더 옳다. 어쩌면 편리하고도 비겁할 마음으로 나는, 이 세계의 전망을 마냥 장밋빛으로 그리는 이들에 대한 과격한 언사들을 세련된 문장에 감추어 드러내곤 한다. 아니면 그저 노코멘트라고 말하거나, 아예 질문을 받지 않으면 입을 다물어버린다. 세계가 변할 것같아? 절대로 안 변해. 나는, 마치 환멸이 너무도 익숙한 나머지 보수당에 표를 던지는 노인네처럼 굴고 있는 건 아닐까 생각해본다.
물론 나에게 핑계가 있다면, 세계를 위해 글을 쓴다는 그 선한 마음씨, 조화와 화합 같은 보송보송한 말들이 기실 세계의 보수성의 핵심이라는 것일 터다. 그러나 내가 이렇게 까칠하게 구는만큼 세계 역시 내게 결코 보송보송한 손길을 내밀지 않을 것이다. 나는 다시 걱정하기 시작한다. 장학금은 받을 수 있을까. 이래갖고 밥은 벌어먹고 살 수 있을까. 환멸은 생활의 반대말이었구나. 어떤 이들은 세계가 보장하는 생활을 위해 새누리당에 투표하는 거로구나라고 지껄여본다.
페미니즘 공부가 그저 지겹고 싫다.
Monday, May 7, 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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