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관주의자가 지혜로운 것은, 그가 비로소 비관을 견디어 냈을 때 지혜가 영글기 때문이다. 어떤 단단한 비관이 있어 나에게 기대어오는 요즘, 나는 매순간 매료되면서도 두려워진 나머지 비관을 길들이겠다는 보수적인 기획을 마음에 품기에 이르렀다. 그러나 문득, 나의 비관 없이는 이 모든 것이 물거품처럼 사라지고 말리라는 현실을 깨닫고, 나의 비관이 이 관계의 조건임을 직시하고 말았다. 결국 우리는 서로의 비관을 알아보고 또 모르는 채 하면서 상대방에게 매료되는 동시에 이내 두려워지고 말아 그저 서로를 껴안고 있는 것이었다.
Saturday, May 18, 2013
Wednesday, June 6, 2012
나는 방법론의 파괴자
"연구참여자"라는 말은 그들이 그저 교체가능한 인터뷰이 1, 2가 아니라, '바로 그 사람'의 '참여'가 없으면 연구가 성립되지 않거나 무너져버리는 상황에만 사용해야 하는 거 아닌가? 지금 하나가 실제로 무너지게 생겼거든.ㅋ
연구참여자, 인포먼트. 이 둘다 결국 그들의 말(뒤)에 진리가 있다는 신념을 공유하고 있다. 그렇다면 인포먼트, 연구참여자라는 명명은 결국 이런 인식론적 차원으로 사고되고 분리될 것이 아니다. 오히려 문제는 존재론(?)이 아닌가 싶다. 그들의 '특유성' 자체가 얼마나 연구에 영향을 미치는가, 그들이 얼마나 연구 자체를 '좌우'하는가라는 지점 말이다. 그렇다면 '연구참여자'라는 명명 대신 다른 말을 만들어내는 것이 좋을 것이다.
이기형 교수는 덴징한테 그렇게 영감을 받았었다는데 나는 대체 어떻게 하면 좋을지 모르겠다. 하하.
연구참여자, 인포먼트. 이 둘다 결국 그들의 말(뒤)에 진리가 있다는 신념을 공유하고 있다. 그렇다면 인포먼트, 연구참여자라는 명명은 결국 이런 인식론적 차원으로 사고되고 분리될 것이 아니다. 오히려 문제는 존재론(?)이 아닌가 싶다. 그들의 '특유성' 자체가 얼마나 연구에 영향을 미치는가, 그들이 얼마나 연구 자체를 '좌우'하는가라는 지점 말이다. 그렇다면 '연구참여자'라는 명명 대신 다른 말을 만들어내는 것이 좋을 것이다.
이기형 교수는 덴징한테 그렇게 영감을 받았었다는데 나는 대체 어떻게 하면 좋을지 모르겠다. 하하.
이론을 해라 비판을 하지 말고.
상대하는 논의 혹은 이론이 결국 자가당착에 불과하다는 수준으로까지 밀어붙이지 않으면, 자기가 비판하려는 이론의 너그러운 통치 따위나 구걸하는 모양새를 완전히 벗어나기 힘들다. 흑인 문제를 다루지 못했다. 여성의 목소리가 빠져 있다. 길거리에 미친 여자 하나 나자빠져서 운다. 제발 경찰이 출동해주기를 바라면서.
Monday, June 4, 2012
전주국제영화제와 나
마치 <요세미티와 나> 같은 제목이 어울린다고 생각했다. 유운성이 해임됐다. 김은정 전북일보 선임 기자는 몇 년 전에 비해 하나도 변하지 않고 오히려 더 '독해진' 모양이다.
트위터 타임라인에서 우연히 정말 유운성 프로 트윗을 본 것 뿐이었다. 순간 나는 정말 눈물이 핑 돌고 가슴이 벌렁거렸다. 바로 리트윗을 했다. 몇 명 보지도 않겠지만 나름 시니컬한 논평 트윗도 올렸다. 잠깐 동안 어디 신문에 투고라도 해야하지 않을까, 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한겨레 <왜냐면>은 어떨까, 라고 생각이 미치게 되었을 때 나는 나 자신의 이 감정이 역겨워지기 시작했다. 그래. 고작 투고할 신문이란 게 결국 '한겨레'였던 거다. 전북일보도, 전주일보도, 전북도민일보도 아닌.
전주국제영화제는 나한테 정말 중요한 계기다. 내 삶을 바꾼 몇 개의 사건을 뽑는다면 전주영화제는 언제나 상위권의 자리를 차지해왔다. 나는 심지어 대학원 학업계획서에도 전주영화제 이야기를 적었다. 전주영화제는 10여년 동안 내가 단 두 번 빼고는 매년 찾았던 축제이며, 언제나 기다리고 기대하게 되는 이벤트이다. 어쩌면 내가 한번도 부산국제영화제에 가볼 생각을 하지 않은 것은, 전주영화제야말로 내가 여행 혹은 순례를 떠날 수 있는 유일한 영화제라는 일종의 충성심을 보존하기 위해서였는지도 모른다.
그런데 실제로 전주국제영화제가 정말로 '전주'국제영화제였던 적이 없는 것같다. 아아, 김은정 기자는 나의 이 비밀을 간파했던 것이다. 나는 아무 말도 할 수가 없는 사람이었다.
트위터 타임라인에서 우연히 정말 유운성 프로 트윗을 본 것 뿐이었다. 순간 나는 정말 눈물이 핑 돌고 가슴이 벌렁거렸다. 바로 리트윗을 했다. 몇 명 보지도 않겠지만 나름 시니컬한 논평 트윗도 올렸다. 잠깐 동안 어디 신문에 투고라도 해야하지 않을까, 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한겨레 <왜냐면>은 어떨까, 라고 생각이 미치게 되었을 때 나는 나 자신의 이 감정이 역겨워지기 시작했다. 그래. 고작 투고할 신문이란 게 결국 '한겨레'였던 거다. 전북일보도, 전주일보도, 전북도민일보도 아닌.
전주국제영화제는 나한테 정말 중요한 계기다. 내 삶을 바꾼 몇 개의 사건을 뽑는다면 전주영화제는 언제나 상위권의 자리를 차지해왔다. 나는 심지어 대학원 학업계획서에도 전주영화제 이야기를 적었다. 전주영화제는 10여년 동안 내가 단 두 번 빼고는 매년 찾았던 축제이며, 언제나 기다리고 기대하게 되는 이벤트이다. 어쩌면 내가 한번도 부산국제영화제에 가볼 생각을 하지 않은 것은, 전주영화제야말로 내가 여행 혹은 순례를 떠날 수 있는 유일한 영화제라는 일종의 충성심을 보존하기 위해서였는지도 모른다.
그런데 실제로 전주국제영화제가 정말로 '전주'국제영화제였던 적이 없는 것같다. 아아, 김은정 기자는 나의 이 비밀을 간파했던 것이다. 나는 아무 말도 할 수가 없는 사람이었다.
Wednesday, May 30, 2012
impossible postcolonial classroom in Korea
왜그런거 있잖나. 미국 대학에 호올로 외국인 학생이 있다고 할 때, 포스트식민 제국의 교실이 그 학생에게 요청/강요하는 역할이 있잖아. 나중에 민망한 후회만 남을 분노가 전혀 쿨하지 않게 발산되고, 어쨌든 정치적인 영감으로 교실이 흠뻑 젖는 그런 순간. 그런데 여기 한국에서 그게 가능할까? 희생양 없이는 영감도 없을 테니, 문화적 타자야 어떻게든 고안해내면 될 일이겠지만 말야. 정체성 정치학은 희생자를 물신화해. 그리고 맨 처음 말하기 시작한 용감한 자는, 마치 연출자의 실수로 방금 찍은 장면을 한번더, 또 한번더 재연/재현해야 하는 다큐멘터리 주인공처럼 피로해. 벨 훅스의 교실이 좀더 프레이리여야 하는걸까? 프레이리의 학생들은 요가라도 좀 해야겠어.
Sunday, May 13, 2012
만약 내가 학위논문 주제를 독립영화로 썼다면
입학할 때 공언한 대로,
국제영화제에 대한 독립영화인들의 경험,
뭐 이런 식으로 해서 심층면접/참여관찰[여기서 나는 분명 참여관찰자라 칭할 수 있다!]로 해서
김경묵, 곡사, 이난, 김동원, 이강현, 김동명 등등
말잘하고 똑똑한 이 사람들을 인터뷰해가지고 논문을 만들었더라면
나는 지도교수의 '탈식민주의와 젠더화된 민족주의'에도 부합하고
백승욱 교수, 주은우 선생을 그대로 엮어가지고
아주아주 재미지고 감동적인 말들로 가득한
즐거운 학위논문을 썼을 진대.
토니 레인즈니, 마크 페란슨이니 하는
코쟁이 서구 비평가들을 마음껏 욕하면서
김소영 교수 손도 이따금 들어주고
조영각한테 칭찬도 받고
독립영화계에도 기여할 수 있는
그런 좋은 논문을 쓸 텐데.
나는 어째서 지도교수를 포함한 그 모든 페미니스트를 미워할 수밖에 없는
이런 논문을 기획해가지고
김소영뿐만 아니라 정성일, 이효인 등등까지 모조리 미워할 예정인
이런 논문을 기획해가지고,
이런 증오를 품은 나 스스로에 대한 증오에까지 휩싸여
갈팡질팡하고 있는 것일까.
국제영화제에 대한 독립영화인들의 경험,
뭐 이런 식으로 해서 심층면접/참여관찰[여기서 나는 분명 참여관찰자라 칭할 수 있다!]로 해서
김경묵, 곡사, 이난, 김동원, 이강현, 김동명 등등
말잘하고 똑똑한 이 사람들을 인터뷰해가지고 논문을 만들었더라면
나는 지도교수의 '탈식민주의와 젠더화된 민족주의'에도 부합하고
백승욱 교수, 주은우 선생을 그대로 엮어가지고
아주아주 재미지고 감동적인 말들로 가득한
즐거운 학위논문을 썼을 진대.
토니 레인즈니, 마크 페란슨이니 하는
코쟁이 서구 비평가들을 마음껏 욕하면서
김소영 교수 손도 이따금 들어주고
조영각한테 칭찬도 받고
독립영화계에도 기여할 수 있는
그런 좋은 논문을 쓸 텐데.
나는 어째서 지도교수를 포함한 그 모든 페미니스트를 미워할 수밖에 없는
이런 논문을 기획해가지고
김소영뿐만 아니라 정성일, 이효인 등등까지 모조리 미워할 예정인
이런 논문을 기획해가지고,
이런 증오를 품은 나 스스로에 대한 증오에까지 휩싸여
갈팡질팡하고 있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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