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ursday, May 10, 2012

학위논문

나중에 내 학위논문을 본 사람들이
이건 남학생이 쓴 글이라고 생각했으면 좋겠다.

Monday, May 7, 2012

세계를 위해 글을 쓰는 게 아냐.

이 환멸은 결국 나를 죽여버리는 게 아닐까 생각한다. 오늘 수업에서 교수는 진심으로 궁금하다는 듯이 '슬럿워크'에 대해 물었다. 나는 '노 코멘트'라고 말했다. 노 코멘트라고 곧잘 말하던 사내애가 있었다. 그 아이는 뭔가 곤란하지만 거짓말을 할 수는 없을 때 노코멘트라고 말했었다.

사회학의 사회적 역할에 대해 많은 선생님들이 강조한다. 내가 긴밀하게 연관을 맺고 있는 필드 역시 바로 그러한 액티비즘의 산물이자, 여전히 오만 가지 액티비즘의 당당한 주체이다. 그러나 언제나 나의 고독은 내가 '더 나은 세계'를 위해 글을 쓰지 않는다는 데에서 온다. 더 나은 세계를 그리는 이들에 대한 적대에서 내 글은 출발한다고 쓰는 게 차라리 더 옳다. 어쩌면 편리하고도 비겁할 마음으로 나는, 이 세계의 전망을 마냥 장밋빛으로 그리는 이들에 대한 과격한 언사들을 세련된 문장에 감추어 드러내곤 한다. 아니면 그저 노코멘트라고 말하거나, 아예 질문을 받지 않으면 입을 다물어버린다. 세계가 변할 것같아? 절대로 안 변해. 나는, 마치 환멸이 너무도 익숙한 나머지 보수당에 표를 던지는 노인네처럼 굴고 있는 건 아닐까 생각해본다.

물론 나에게 핑계가 있다면, 세계를 위해 글을 쓴다는 그 선한 마음씨, 조화와 화합 같은 보송보송한 말들이 기실 세계의 보수성의 핵심이라는 것일 터다. 그러나 내가 이렇게 까칠하게 구는만큼 세계 역시 내게 결코 보송보송한 손길을 내밀지 않을 것이다. 나는 다시 걱정하기 시작한다. 장학금은 받을 수 있을까. 이래갖고 밥은 벌어먹고 살 수 있을까. 환멸은 생활의 반대말이었구나.  어떤 이들은 세계가 보장하는 생활을 위해 새누리당에 투표하는 거로구나라고 지껄여본다.

페미니즘 공부가 그저 지겹고 싫다.




Tuesday, March 27, 2012

90년대의 맥락

차우진 트위터에서.

‎87년 해외여행자율화, 90년 일본출판개방(드래곤볼 정식판), 방송법 개정(SBS, 케이블TV), 유니텔/하이텔, 삼성+LG 영화/음악산업진출 같은 걸 빼고 90년대 대중문화와 세대를 얘기할 수 있을까. 근데 아직도 서태지만...

Thursday, March 1, 2012

국가간체계에서 정책 차이의 발생

"헤게모니 국가일수록 자유경쟁, 자유무역 이데올로기를 내세우게 되고, 추격하는 국가일수록 보호주의를 내세우는 것이 일반적입니다. 특히 반주변부 국가에서 보호주의적 정책이 가장 강하게 나타나는데, 이는 자국의 산업을 보호해서 앞선 국가들을 따라잡으려는 강한 욕구를 지니기 때문입니다. 그렇지만 이는 상승에 성공하기 위해서라기보다는 추락하지 않기 위해서 그렇게 되는 경우가 더 많다고 하겠습니다.
 국가들마다 정책에서 차이가 나는 이유는 국가간체계의 위계 속에 놓여있는 국가의 위상 차이가 국가가 수행할 수 있는 정책 범위를 제약하고 있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백승욱, <자본주의 역사 강의> 195쪽)

주변부 국가 정책 논리의 종속성.

월러스틴과 오늘날 문화생산자 논의의 한계

"월러스틴은 노동의 영역을 실질적으로 포섭했을 때의 변화를 사실상 정치적 포섭의 문제로 대체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러니까 이 문제를 자유주의에 의해서 노동자들이 어떻게 포섭되어왔는가라는 정치적 차원의 문제로 가지고 가기 때문에, 그 이면에 깔린 문제들로 더 들어가지 않는다는 것이죠. 따라서 분석이 여전히 분배 차원에 머물러 있고, 생산의 영역으로 파고들어간 것은 아닌데,  이 한계는 브로델과 직접적으로 연결된다고 볼 수 있습니다. 브로델의 한계를 이야기하면서, 브로델에게 독점의 문제는 영역이 계속 바뀌어가면서 나타나는 몫의 배분 문제이지, 생산구조 자체의 전화 문제는 아니라고 했죠. 이와 같은 문제가 월러스틴에게도 반복되는데, 그 이유는 앞서도 지적했듯이 월러스틴의 초기 입론이 대부분 농업자본주의에 맞춰져 있다는 것 그리고 분석의 시대가 1840년에 중단된 상태라는 것과 연관될 것입니다." (백승욱, <자본주의 역사 강의>, 244-5)


문화 노동자들에 대한 착취를 말하는 오늘날 미디어 생산자 연구자들 역시
노동자들의 형식적 포섭과 더불어 실질적 포섭을 논함에 있어,
정치적 차원의 문제로 환원하는 것은 아닐까?

Wednesday, February 22, 2012

지금은 없는, 사실 이제껏 존재해본 적 없는 소녀에게

http://blog.daum.net/phb3075/2395


바나나파이, 인켈 전축과
들국화, 양희은이 공존하던 풍경을 살던 소녀. 혹은 TWEEN

이 풍경은 정말 존재했던 풍경이었는지?
이 시집의 제목은 <피터래빗 저격 사건>이다.